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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고려 말기 상황과 조선 건국 과정

by butterbear 2025. 3. 2.

고려 말기 상황과 조선 건국 과정

1. 고려 말기 상황

① 권문세족의 부패

  • 원나라의 간섭(1270~1356)으로 인해 고려 내 친원 세력(권문세족)이 형성됨.
  • 이들은 원나라의 힘을 빌려 권력을 장악하고 대토지를 소유하면서 백성을 착취함.
  • 권문세족들은 음서(世襲)와 공음전(公蔭田)을 통해 높은 관직을 독점하고, 국가의 토지제도를 무너뜨리며 국정을 농단함.
  • 반면, 신진사대부(성리학 수용)는 이에 반발하며 개혁을 주장함.

② 신진사대부의 등장

  • 고려 후기 성리학이 중국 원나라를 통해 도입되면서 새로운 지식층(신진사대부)이 등장함.
  • 신진사대부는 주로 지방의 향리 출신이 많았으며, 과거 시험을 통해 성장함.
  • 이들은 성리학을 바탕으로 유교적 이상 정치 실현과 권문세족 개혁을 주장함.
  • 이후 개혁 추진을 둘러싸고 온건파(정몽주)와 급진파(정도전)로 분열됨.

③ 왜구 및 홍건적의 침입

  • 고려 말기 국력이 쇠약해지면서 외부의 침략이 빈번해짐.
  • 왜구(倭寇)의 침입: 14세기 후반 일본 해적(왜구)이 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고려를 지속적으로 습격.
    • 박위, 최무선 등이 화포를 사용하여 격퇴(진포대첩, 1380).
  • 홍건적(紅巾賊)의 침입: 원나라 말기 중국에서 일어난 농민 반란군(홍건적)이 1359년과 1361년 두 차례 고려를 침략.
    • 1361년 홍건적이 개경까지 점령하여 공민왕이 복주(안동)로 피난함.
    • 최영과 이성계 등이 이들을 격퇴하여 국왕을 복위함.

④ 공민왕(1351~1374)의 개혁

  • 원나라의 쇠퇴를 기회로 삼아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개혁을 단행함.
  • 친원 세력(권문세족) 숙청: 기철 등 친원파를 제거함.
  • 정방(권문세족의 인사권 장악 기구) 폐지: 인사 행정을 왕권 중심으로 개혁함.
  • 전민변정도감 설치: 신돈을 등용하여 권문세족이 불법적으로 차지한 토지를 정리하고 노비를 해방하려 함.
  • 하지만 개혁이 권문세족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신돈이 제거되었고, 공민왕도 1374년 시해당하며 개혁이 실패함.

⑤ 우왕·창왕 시기의 혼란

  • 공민왕이 죽은 후 권문세족이 다시 득세하여 우왕(1374)과 창왕(1388)이 즉위함.
  • 고려 조정 내에서는 개혁파와 보수파의 대립이 계속됨.
  • 왜구가 극성해지면서 고려는 요동 정벌을 추진(1388), 하지만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이 급변함.

2. 조선 건국 과정

① 위화도 회군(1388)

  • 우왕과 최영은 요동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명나라를 공격하는 ‘요동 정벌’을 단행함.
  • 이성계가 요동 정벌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압록강을 건너려 했으나, 명분과 실리를 고려하여 반대함.
  • 위화도에서 군을 돌려 개경으로 복귀(위화도 회군)
  • 이성계가 정권을 장악하고 최영을 제거함.

② 공양왕 즉위(1389)

  • 이성계 세력이 우왕과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즉위시킴.
  • 신진사대부 내부에서 고려 왕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온건파(정몽주)와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는 급진파(정도전)의 갈등이 심화됨.

③ 정몽주 암살(1392)

  • 정몽주가 고려 왕조 유지를 주장하자, 이방원이 ‘단심가’를 읊은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암살함.
  •   정몽주의 죽음으로 고려 왕조를 유지하려던 온건 개혁파가 사라지고, 급진 개혁파(정도전·이성계)가 우세해짐.
〈하여가〉와 〈단심가〉는 고려 말 조선 건국 과정에서 대표적인 충절과 변혁의 상징이 된 시조이다.
이 두 시조는 정몽주(고려 충신)와 이방원(후일 태종)이 주고받은 노래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왕조 유지파(온건 개혁파)와 새로운 조선 건국 세력(급진 개혁파)의 입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 〈하여가〉 - 이방원의 시조

▶ 배경:
  • 고려 말, 이방원의 아버지 이성계는 조선 건국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정몽주는 끝까지 고려 왕조를 지키려 함.
  • 이방원이 정몽주의 마음을 돌려 함께 새 나라를 세우도록 설득하고자 읊은 시조.
▶ 원문: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 의미:
  • ‘이런들 저런들’이라는 표현으로 정치적 변화를 암시하며, 정몽주에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 나라 건국에 동참할 것을 권유함.
  • ‘만수산 드렁칡’은 서로 얽혀있는 모습을 비유하여 함께 협력하면 오래 번영할 것을 의미.
  • 이방원은 고려에 대한 충절보다는 새로운 시대를 함께 열어나가자는 뜻을 전함.

2. 〈단심가〉 - 정몽주의 시조

▶ 배경:
  •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한 정몽주의 응답.
  • 그는 고려에 대한 충절을 강조하며 변함없는 충성심을 노래함.
▶ 원문: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의미:
  •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라는 표현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고려에 대한 충성심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임.
  •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는 설령 육신이 사라진다 해도 충성하는 마음만은 변치 않겠다는 뜻.
  • ‘임 향한 일편단심’에서 ‘임’은 고려 왕실을 의미하며, 고려 왕조를 위해 끝까지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함.

3. 이후 전개

  • 정몽주는 끝까지 고려 왕조를 지키려 했으며, 이방원의 뜻에 따르지 않음.
  • 결국 1392년, 이방원이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암살하면서 조선 건국의 결정적 계기가 됨.
  • 〈하여가〉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세력의 입장을, 〈단심가〉는 고려 왕조를 끝까지 지키려는 충신의 절개를 상징하게 됨.

4. 역사적 의미

  • 〈하여가〉: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려는 개혁 세력의 논리를 담음.
  • 〈단심가〉: 충절과 신의를 중시하는 고려 충신의 정신을 보여줌.
  • 이 두 작품은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교체기 속에서 충성과 개혁, 보수와 혁신의 갈등을 문학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됨.
오늘날에도 충성, 개혁, 가치관의 선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조로 자주 인용된다.

④ 조선 건국(1392)

  • 1392년 공양왕이 폐위되고, 이성계가 새 왕으로 즉위하여 ‘조선’을 건국함.

⑤ 조선 왕조 정비(1392~1394)

  •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고 한양으로 천도(1394).
  • 정도전이 새 왕조의 기본 틀을 마련함.
    • 정치 체제 개혁: 재상 중심 정치 구상
    • 성리학 국가 건설: 불교 세력 억압, 유교 중심의 국가 이념 확립
    • 법·행정 제도 개혁: 경국대전 초안 마련

⑥ 왕자의 난(1398)

  • 이성계가 나이가 들면서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두고 갈등 발생.
  • 정도전은 왕권보다 신권을 강화하려 했고, 이방원(태종)은 왕권 강화를 주장함.
  • 제1차 왕자의 난(1398): 이방원이 정도전·이복 동생 방석 등을 제거하고 실권 장악.
  • 이성계가 왕위를 정종(이방과)에게 물려줌.

⑦ 제2차 왕자의 난(1400)

  • 이방원이 이방간을 제거하고 태종(1400)으로 즉위.
  • 태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조선의 통치 기틀을 다짐.

3. 조선의 국가 체제 확립

  • 태종(1400~1418)과 세종(1418~1450)을 거치며 중앙집권 체제 확립.
  • 과전법 정비, 유교 정치 확립, 군사 조직 개편 등으로 조선 왕조의 기틀이 마련됨.

이처럼 고려 말의 혼란과 개혁의 흐름 속에서 신진사대부가 성장하고, 이성계와 정도전이 조선을 건국하게 됨. 이후 왕권을 둘러싼 갈등 끝에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면서 조선의 통치 체제가 안정화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