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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발해의 건국과 발전 과정과 문화재

by butterbear 2025. 2. 27.

발해의 건국과 발전 과정과 문화재

1. 발해의 건국

발해는 698년 고구려 유민 출신 대조영이 길림성 동모산(현재 중국 지린성 돈화시) 지역에서 세운 국가이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많은 유민들이 당에 의해 강제 이주되었고 일부는 신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대조영을 비롯한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 일부가 결집하여 당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언하였다. 초기 국호는 "진국(震國)"이었으며, 이후 713년 당으로부터 국호 "발해(渤海)"를 승인받으면서 국제적으로 정식 국가로 인정받았다.

2. 국가 발전 과정

발해는 약 200여 년간 존속하면서 여러 왕들의 통치 아래 꾸준히 성장하였다. 주요 발전 과정은 다음과 같다.

  • 무왕(719~737) 시기: 대조영의 뒤를 이어 즉위한 무왕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대외 정책을 펼쳤다. 당과의 대립이 지속되었고, 732년에는 발해군이 산둥반도의 등주를 공격하여 당과의 전쟁을 벌였다. 또한, 돌궐 및 일본과도 외교 관계를 맺으며 국제적 입지를 넓혔다.
  • 문왕(737~793) 시기: 무왕의 강경한 외교 정책과는 달리 문왕은 당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유교적 통치 이념을 도입하였다. 수도를 중경(중경현덕부)에서 상경(상경용천부)으로 천도하였으며, 당의 문물제도를 받아들여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확립하였다. 불교를 국교로 삼아 왕권을 강화하였고, 당나라와 유학생을 교류하며 학문과 문화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 선왕(818~830) 시기: 발해의 전성기로 평가되며, 영토 확장과 함께 국가 체제가 완성되었다. 북으로는 흑룡강 유역까지, 남으로는 요동반도까지 영향력을 미쳤으며, 서쪽으로는 요하를 경계로 거란과 접하였다. 당시 발해는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강성한 국가였다.

3. 행정 및 사회 구조

발해는 당의 제도를 본떠 행정을 운영하였다.

  • 중앙 행정: 3성 6부제를 도입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관료 체계를 정비하였다.
    • 정당성: 국가 정책을 총괄하는 기구
    • 선조성, 중대성: 행정 및 왕명 수행을 담당
    • 6부: 충부(이부), 인부(병부), 의부(호부), 지부(형부), 예부(예부), 신부(공부)로 구성됨
  • 지방 행정: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체계를 운영하였으며, 수도였던 상경 외에도 중경, 동경, 남경, 서경 등 5개의 주요 도시를 전략적으로 배치하였다.
  • 사회 구조: 발해는 귀족 중심의 신분제 사회였으며, 고구려 유민이 지배층을 형성하고 말갈족이 피지배층으로 존재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융합이 이루어졌다.

4. 문화와 유산

발해는 고구려 문화를 계승하면서도 당, 신라, 거란 등의 영향을 받았다.

  • 건축 및 도시 구조: 수도 상경은 당의 장안성을 본떠 계획된 도시로, 궁성, 외성, 주작대로 등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 불교 문화: 발해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많은 사찰과 불교 유적을 남겼다.
  • 대표적인 문화재:
    • 정혜공주묘: 고구려식 돌무지무덤 형태로, 고구려와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 정효공주묘: 벽화가 남아 있으며, 당나라와의 문화 교류 흔적이 보인다.
    • 상경용천부 유적: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의 중심 유적으로, 발해의 발전된 도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 영광탑: 발해의 불교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탑으로, 당시의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5. 대외 관계

발해는 다양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였다.

  • 당나라: 초반에는 대립 관계였으나, 문왕 이후 친선 관계를 형성하고 유학생을 파견하며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다.
  • 신라: 신라와는 경쟁 관계였으며,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을 두고 대립하였다. 신라와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으나, 견제와 갈등이 지속되었다.
  • 일본: 일본과는 우호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여러 차례 사신을 파견하고 문물을 교류하였다.
  • 거란 및 돌궐: 북방 유목 민족과는 군사적으로 대립하면서도 상업적으로는 교류가 이루어졌다.

6. 멸망

발해는 10세기 초반 거란의 침략을 받아 926년 멸망하였다. 주요 원인은 내부적인 권력 갈등, 신라 및 주변 민족과의 대립, 거란의 강력한 군사력 등이었다. 발해 멸망 이후, 일부 유민들은 고려로 망명하여 고려의 통일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일부는 후발해 등의 세력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7. 결론

발해는 고구려의 후계 국가로서 강력한 군사력과 발전된 문화를 갖춘 국가였다. 중앙집권적 행정 체계와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번영하였으며,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동북아시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비록 거란의 침략으로 멸망하였으나, 그 유산은 고려로 이어져 한반도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8. 발해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발해를 배경으로 한 작품의 수는 아주 제한적이다.

 (1) 드라마

  • 대조영: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방영된 KBS 대하드라마로, 발해의 건국자인 대조영의 생애와 발해 건국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총 134부작으로 제작되었으며, 발해사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수종(대조영 역), 정보석(이해고 역), 이덕화(설인귀 역), 정태우(검이 역), 박예진(초린 역), 홍수현(숙영 역) 등이 출연하였다.

 (2) 영화

  • 무영검: 2005년 개봉한 영화로, 발해를 배경으로 한 액션 영화이다. 이서진(발해 왕자), 윤소이(여전사 역) 등이 출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