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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고려의 대외 관계와 거란·몽골의 침략

by butterbear 2025. 3. 1.

고려의 대외 관계와 거란·몽골의 침략

고려는 건국 이후 주변국들과의 외교적 관계를 적극적으로 유지하면서도,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자주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강대국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고, 특히 거란(요), 여진(금), 몽골(원) 등의 침략을 받으며 극심한 전쟁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고려는 강한 저항과 외교적 책략을 활용하여 자주성을 유지하려 했지만, 결국 원나라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1. 고려 초기의 대외 관계 (10~11세기)

(1) 중국과의 관계

  • 고려는 건국 초부터 중국의 오대십국 및 송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었다.
  • 고려는 송나라와 친선 관계를 유지하며 문물을 받아들이고 교류를 활성화하였다.
  • 송나라는 고려와 연합하여 북방의 강대국 거란(요나라)에 대항하려 하였다.

(2) 거란(요)과의 대립과 전쟁

  • 10세기 말, 만주 지역을 지배한 거란(요나라)은 고려를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 고려는 송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거란은 고려가 자신들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는 걸 경계했다.
  • 993년부터 **거란의 1차 침입(서희의 외교담판)**을 시작으로 고려는 세 차례의 거란 침략을 겪었다.

2. 거란(요)의 3차례 침략과 고려의 대응

(1) 1차 거란 침입 (993년, 서희의 외교 담판)

  • 거란의 성종이 고려를 공격하며 80만 대군을 보내 압박함.
  • 고려의 서희가 담판을 벌여 외교 협상으로 거란군을 철수시킴.
  • 고려는 거란과 형식적인 사대 관계를 맺는 대신, 압록강 유역의 여진족 지역을 고려 영토로 확보함.

(2) 2차 거란 침입 (1010년, 강조의 정변 이후 전쟁)

  • 고려에서 강조가 쿠데타(강조의 정변)를 일으켜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을 즉위시킴.
  • 이를 구실로 거란이 재침략하여 개경을 점령하고 고려 왕실은 나주로 피신함.
  • 고려는 후방에서 전열을 정비한 후 거란군을 반격하여 철수시킴.

(3) 3차 거란 침입 (1018~1019년, 강감찬의 귀주대첩)

  • 거란의 소배압 장군이 이끄는 대군이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강감찬의 고려군이 결정적으로 격퇴함.
  • **귀주대첩(1019년)**에서 고려군이 거란군을 전멸시키며 거란의 침략을 종식시킴.
  • 이후 고려와 거란은 강동 6주의 확보를 바탕으로 평화 관계를 유지함.

3. 여진과의 관계 및 금나라의 부상

(1)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1107년)

  • 12세기 초, 여진족이 강성해지면서 고려의 북방을 위협하였음.
  • 고려의 윤관이 1107년 별무반(기병 중심의 군대)을 조직하여 여진족을 정벌함.
  • 고려는 여진족을 격퇴하고 만주의 동북 9성을 설치하였으나, 여진의 반격과 내정 문제로 1년 만에 반환함.

(2) 금나라(여진족)의 성장과 고려의 외교 변화

  • 1115년 여진족이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금나라를 세움.
  • 금은 고려에 사대를 요구하였으며, 고려는 현실적인 외교를 위해 이를 수용함.
  • 그러나 고려 내부에서는 친금(親金)과 반금(反金) 세력 간 갈등이 지속됨.

4. 몽골의 침략과 고려의 항쟁 (1231~1259년)

(1) 몽골의 부상과 고려에 대한 압박

  • 13세기 초, 몽골 제국이 등장하여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정복하고 동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함.
  • 몽골은 고려에 조공 요구를 하였으나, 고려가 이를 거부하자 1231년 침략을 개시함.

(2) 몽골의 1차 침략 (1231년)

  • 몽골의 살리타 장군이 고려를 공격하여 개경을 함락함.
  • 고려는 몽골과 협상을 통해 일시적인 강화를 맺었으나, 몽골의 간섭이 심해지자 이를 거부함.

(3) 고려의 강화 천도 (1232년, 강화도로 수도 이전)

  • 고려는 몽골의 지속적인 침략을 막기 위해 최우의 주도 아래 수도를 강화도로 옮김.
  • 강화도는 섬이므로 몽골 기병이 공격하기 어려웠으며, 고려는 장기적인 항전 전략을 펼침.

(4) 몽골의 반복적인 침략과 고려의 저항

  • 몽골은 1235년부터 지속적으로 고려를 공격하였으며, 고려는 강한 저항을 지속함.
  • 1254년 몽골의 5차 침략에서 수많은 백성이 희생됨.
  • 몽골과의 전쟁은 고려의 경제와 사회를 피폐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고려는 협상을 시도함.

(5) 고려의 항복과 개경 환도 (1259년)

  • 고려의 **무신 정권(최씨 정권)**이 약화되자, 고려는 몽골과의 강화를 추진함.
  • 1259년 고려의 최항 사망 이후, 왕실이 개경으로 환도하면서 몽골과의 전쟁은 사실상 끝이 남.
  • 고려는 몽골과 종속적 관계를 맺고, 이후 친원(親元) 정책을 따르게 됨.

5. 고려-몽골 관계와 원 간섭기 (1270~1356년)

(1) 삼별초의 항쟁 (1270~1273년)

  • 개경 환도에 반대한 **삼별초(무신정권의 군대)**가 강화도에서 저항하였으나, 몽골군에 의해 진압됨.
  • 이후 삼별초는 제주도로 이동하여 마지막까지 항전하였으나 결국 패배함.

(2) 원나라의 내정 간섭

  • 고려는 원나라에 공물을 바치고 원의 간섭을 받는 **부마국(사위국)**의 형태가 됨.
  • 고려 왕은 원나라의 공주와 결혼해야 했으며, 원나라의 정치 간섭이 심해짐.

(3) 고려의 반원 정책과 자주성 회복 (공민왕, 1356년)

  • 1350년대 원나라가 약해지자, 고려의 공민왕은 친원파를 숙청하고 쌍성총관부를 수복함.
  • 원나라의 쇠퇴를 틈타 고려는 다시 독립적인 외교 정책을 추진하며 자주성을 회복하려 함.

결론

고려는 거란, 여진, 몽골 등의 외세 침략 속에서도 적극적인 외교와 군사적 대응을 통해 자주성을 유지하려 했다. 특히 몽골과의 전쟁은 고려의 국력을 크게 소모시켰지만, 결국 공민왕 때에 이르러 자주적인 고려로의 회복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은 이후 조선 건국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