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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조선 말기 개항과 외세 침략

by butterbear 2025. 3. 8.

조선 말기 개항과 외세 침략

조선 말기는 국내외적으로 격변의 시기였다. 19세기 후반 조선은 내부적으로는 세도 정치의 폐해로 인한 경제적 피폐와 사회적 혼란을 겪었고, 외부적으로는 서구 열강과 일본의 압박을 받으며 개항을 강요당했다. 이 과정에서 흥선대원군의 개혁, 강화도 조약, 개항 이후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 등이 중요한 역사적 흐름을 형성했다. 조선은 개항과 함께 국제 질서 속으로 편입되었지만, 외세의 경제적 침탈과 정치적 간섭이 심화되면서 점차 주권을 잃어갔다.


1. 흥선대원군의 개혁과 쇄국 정책

19세기 후반, 조선은 세도 정치로 인해 국정이 문란해지고 경제적 어려움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흥선대원군(이하응)이 어린 고종(조선 26대 왕)을 대신하여 섭정을 맡으며 개혁을 추진하였다.

① 정치 개혁: 왕권 강화와 세도 정치 척결

  • 안동 김씨를 비롯한 세도 가문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 비변사(국가 군사·정치 기구)를 폐지하고 의정부와 삼군부를 복원하여 조선 후기 문란해진 통치 체계를 정비하였다.

② 경제 개혁: 삼정(三政)의 문란 시정

  •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해 **호포제(戶布制, 양반에게도 군포 부과), 사창제(社倉制, 민간에서 운영하는 곡물 대여제)**를 시행하였다.
  • 그러나 양반들의 반발이 거세어 개혁이 완전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③ 대외 정책: 척화비 건립과 쇄국 정책

  • 서구 열강이 개항을 요구하자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에서 무력으로 대응하며 강경한 쇄국 정책을 유지하였다.
  • 전국에 척화비(斥和碑, “서양과 화친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내용이 새겨진 비석)를 세우며 외세와의 교류를 철저히 차단하였다.
  • 프랑스, 미국 등의 침략을 일시적으로 저지하는 데 성공했으나, 외세의 위협은 지속되었다.

흥선대원군의 개혁과 쇄국 정책은 단기적으로 조선의 국권을 지키는 효과가 있었으나, 근본적인 국력 회복에는 실패하였고, 1873년 고종이 친정을 시작하면서 대원군은 권력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2. 강화도 조약(1876): 조선의 개항과 일본의 침략적 접근

흥선대원군이 실각한 후, 조선의 대외 정책은 점차 개방적인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이를 노린 일본은 조선을 강제 개항시키기 위해 무력 도발을 감행하였다.

① 운요호 사건(1875)

  • 일본은 조선을 개항시키기 위해 1875년 운요호(雲揚號) 사건을 일으켰다.
  •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앞바다에 침입해 조선 수비대와 충돌하였고, 이를 빌미로 일본은 조선에 개항을 강요하였다.

② 강화도 조약(1876)

1876년, 조선과 일본은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을 체결하였으며, 이는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불평등 조약이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조선은 자주국이며 일본과 평등한 관계임을 명시(그러나 이는 일본이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을 부정하려는 의도였다).
  • 부산, 원산, 인천 등 3개 항구 개항
  • 일본인은 조선에서 자유롭게 교역하며 치외법권(영사재판권)을 누림
  • 조선 연안 측량 허용(일본이 조선의 해안 지도를 제작할 수 있도록 허용)

강화도 조약은 명백한 불평등 조약이었으며, 이후 조선은 서구 열강과도 비슷한 조약(조미수호통상조약(1882),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1882) 등)을 체결하며 점차 외세의 경제적 침탈을 겪게 되었다.


3. 개항 이후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

① 서구 열강의 경제적 침투

조선은 개항 이후 서구 열강과의 무역이 확대되었으나, 대부분의 조약이 불평등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조선 경제는 점차 종속적인 구조로 전락하였다.

  • 청(淸):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통해 경제적 영향력 확대
  • 미국, 영국, 독일 등 서구 열강: 개항장을 중심으로 무역 확대
  • 서구의 상인들이 조선에 진출하여 면직물, 설탕, 석유 등의 외국 상품을 유입시키고, 쌀 등 조선의 주요 생산물을 반출

② 일본의 경제적 침탈과 정치적 간섭

  • 일본은 조선의 경제를 장악하기 위해 조선 시장에 값싼 일본 상품을 대량 유입시키고, 조선의 쌀을 수탈하여 일본 경제에 활용하였다.
  •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을 계기로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고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을 통해 친일 개혁 세력을 이용해 정권을 장악하려 했으나, 청나라의 개입으로 실패하였다.

③ 청·일 전쟁(1894)과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 강화

  •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둘러싸고 **청과 일본이 충돌(청·일 전쟁, 1894~1895)**하였고, 결국 일본이 승리하면서 청의 간섭이 약화되었다.
  • 이후 일본은 1895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일으켜 조선의 내정에 본격적으로 개입하였다.
  • 일본은 조선에서 친일 내각을 세우고 점차 정치적, 군사적 지배력을 확대해 나갔다.

4. 조선 말기 개항과 외세 침략의 의의와 영향

  • 개항과 함께 조선은 국제 질서 속으로 편입되었지만, 불평등 조약으로 인해 경제적 종속이 심화되었다.
  • 일본은 강화도 조약 이후 점차 조선에 대한 정치·경제적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식민지화를 추진하였다.
  • 청·일 전쟁 이후 청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일본의 조선 장악이 본격화되면서, 조선의 자주권은 점차 약화되었다.

조선 말기의 개항과 외세 침략은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며, 이후 국권을 상실하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